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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수백 포기 낟알 세며 정직 가르친 아버지


보릿고개를 넘는 게 가장 큰 과제였던 1960년대, 전국 농촌이 벼 품종 개량에 몰두했다. 어느 가을 밤 전남 고흥군 대서면사무소의 말단 공무원이었던 송병수(83)씨는 밤새도록 마을에서 수확한 벼의 낟알을 일일이 세고 있었다. 기존 벼와 새 품종의 수확량을 비교해 군청에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서너 개 품종별로 각각 50포기씩 뽑아 수확량을 계산했다. 여느 공무원은 대개 벼 한두 포기만 비교해 보고서를 작성하곤 했지만 송씨의 생각은 달랐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고된 작업을 자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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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성 교수(오른쪽)와 아버지 송병수씨가 서로 주고 받은 수십 통의 편지를 읽고 있다. 아버지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 등을 인용하며 성년이 된 후에도 송 교수가 바른길을 걸을 수 있도록 조언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자정이 넘도록 귀가하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면사무소에 간 맏아들 송하성(62)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교수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아버지는 이처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정직하게 행동했다. 스스로 모범을 보여 자식들을 가르쳤다”고 회고했다. 송 교수는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인성교육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공부하라거나 출세하란 말씀은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었어요. 다만 바른 마음을 가질 것,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것, 정직할 것 이렇게 세 가지만 강조하셨죠.” 송 교수는 “보통 인성 하면 도덕과 윤리만 생각하기 쉽지만 바른 인성이 밑바탕이 돼야만 공부도 잘하고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성이 가장 큰 실력’이라는 이야기다.

인성=실력 보여준 송하성 교수 가족
초등학교만 나와 서른에 면 서기
품종별 수확량 정확히 보고하려
다들 한두 포기 셀 때 50포기씩 뽑아

송병수씨의 6남매 중 송 교수를 포함한 네 형제가 행정·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한 집안에 한 명 나오기 어려운 고시 합격자를 네 명이나 배출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송 교수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할머니나 아버지께서 숟가락을 들지 않으시면 밥을 먹지 않았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십여 분씩 밥상에서 기다리면서 자연스레 절제와 인내력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밥상머리에서 배운 절제의 습관이 고시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서른의 나이에 공무원이 된 아버지가 강조했던 말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그는 늘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할 것과 결과보다 과정을 중히 여길 것을 강조했다. 어릴 적 연을 만들어 날리는데 유독 송 교수의 연만 꼬라박기 일쑤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뼈대 만드는 법부터 실 감는 요령까지 차분히 알려줬다. “권위적인 아버지 같았으면 ‘사내 놈이 연도 하나 못 만드냐’며 타박을 줬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결과를 놓고 탓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그 방법을 천천히 알려주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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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성 교수가 첫째 승환씨의 법무장교 임관식에 참석했다. 송승환씨는 2007년 사법고시 합격 후 2011년부터 군법무관으로 복무했다. [사진 송하성]

송 교수가 고교에 진학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맏이로서 온 집안의 기대를 받고 광주상고에 진학했지만 1학년 때 성적은 전교 130등 정도였다. 송 교수는 “친구들 사이에서 어리바리하고 영특하지 못해 ‘맹돌이’라고 불렸다”고 밝혔다. 아버지는 달랐다. 송 교수는 “늘 ‘그 정도면 잘했다’고 격려하셨다. 결과보다 과정에서 최선을 다했는지를 물어보고 노력에 대해 칭찬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어릴 적 우직하게 볍씨를 세던 아버지처럼 3년간 성실히 공부한 끝에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 근무할 때도 아버지는 수시로 “혼자서만 잘살기 위해 공부하지 말고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자신에겐 엄격했지만 자녀에겐 다정다감했던 아버지의 소통 노력도 자녀의 인성 함양에 영향을 미쳤다. 변변한 동화책 하나 없던 시절 아버지는 한자가 빼곡한 『삼국풍류』와 같은 역사소설을 자녀들의 눈높이에 맞게 재미있게 읽어줬다. 조그만 단칸방에서 삼국통일을 놓고 펼쳐지는 왕건·궁예 등 영웅들의 이야기는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었다. ‘안방극장’이 끝날 무렵엔 아버지는 자녀들의 의견을 물었고, 6남매는 서로 토론을 벌이다 잠들었다.

인사예절은 인성교육의 가장 기본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마을 어른에게 깍듯했다. 처음 보는 노인에게도 공손히 인사하고 차근차근 안부를 물었다. 어른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는 사람은 멀리했다. 송 교수는 “아버지의 행동을 보고 배우면서 바른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가짐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다”고 말했다.

회초리를 들 때도 있었다. 특히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다. “딱 세 번 매 맞은 적이 있어요. 집의 달걀을 훔쳐 아이스크림과 바꿔 먹고, 학용품 산다고 거짓말하고 몰래 돈을 타냈을 때처럼 모두 거짓말을 했을 때였죠.” 대신 자녀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잘못이고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말하도록 했다. 송 교수는 “아버지께 한 번 혼나고 나면 남매들은 같은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교육 방식은 아들의 자녀 교육으로 이어졌다. 송 교수는 딱 한 번 자녀를 체벌한 적이 있다. 큰아들이 6학년 때 세 살 어린 둘째 아들을 이유 없이 때렸을 때다. 송 교수는 아버지가 그랬듯 무작정 혼내지 않았다. “스스로 뭘 잘못했는지 깨달을 수 있게 한참 동안 대화했습니다. 무조건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아이는 스스로 잘못을 깨치지 못하잖아요.” 그는 “많은 부모가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여기고 막말을 한다. 하지만 부모의 언행은 아이 인성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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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의 삶도 아버지의 삶을 닮아갔다. 아버지는 면사무소에 새로운 업무가 떨어질 때마다 늘 새벽까지 호롱불을 켜고 공부했다. 돼지 콜레라가 유행할 때는 전염병 서적을 읽고 돼지 농가를 찾아가 직접 주사를 놓았다. 틈틈이 영어·일본어도 독학했다.

송 교수도 아버지처럼 최선을 다했다. 1985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뽑힌 그는 기초 수준의 프랑스어만을 배운 상태에서 유학길에 올랐다. 하루 두세 시간만 잠자며 공부에 열중한 끝에 파리1대학에서 3년4개월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인 르몽드에 그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송 교수의 큰아들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판사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둘째 아들은 현재 군복무 중이다. 송 교수는 “명문대에 들어가고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는 비결은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데 있지 않다”며 “바른 마음을 갖고 자신을 조절할 줄 알며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이 진짜 실력을 갖추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큰아들 승환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며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두 분처럼 늘 겸손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글=윤석만·전민희 기자 sa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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