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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850g짜리 캠핑의자…아저씨 둘이 앉아도 끄떡없어요

6·25 후 황폐해진 땅에는 수출할 물건이 없었다. 해외에 농산물을 팔았다.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기술도 축적됐다. 해외 유명 브랜드에 우리 기술로 생산한 제품을 납품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어 제품 개발까지 독자적으로 하는 세계적인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이 속속 등장했다. 마침내 삼성·현대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자적 ‘한국 브랜드’가 산업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라익진·라제건·라영환 3대
‘세계 최고 되겠다’ 대 이은 도전
빼어난 기술력에도 ODM 한계
아들이 자체 브랜드 전략으로 극복
레드닷 어워드 4년 새 10개 수상

이런 한국 산업계의 성장사는 라제건(62) 동아알루미늄(DAC) 대표의 선친으로부터 아들까지 이어지는 기업인 3대(代)의 삶에도 오롯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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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 기술을 보유한 ‘동아알루미늄(DAC)’의 라제건 대표(오른쪽), 그리고 DAC의 혁신 기술로 만든 아웃도어 제품을 ‘헬리녹스’라는 자체 브랜드로 1000만 달러 넘게 수출한 아들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가 텐트 안에 앉았다. 텐트를 포함한 제품은 모두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와 ISPO뮌헨(아웃도어 박람회) 등에서 상을 받은 헬리녹스 제품들이다. [사진 신인섭 기자]


“선친께선 ‘나는 (해외에) 김·미역 수출하고, 미국 컴퓨터 들여와 팔았지만 너는 네 우물을 파라’고 하셨죠. 저는 처음부터 ‘세계 최고’가 목표였어요. 그래서 기술로 승부를 겨루는 사업을 택했습니다.”

라 대표의 선친은 상공부 차관,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등을 지낸 라익진 동아무역·동아컴퓨터 회장(1915~1990)이다. 세계 최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라 대표는 ‘특수 기술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높지만, 대기업이 뛰어들기엔 좀 작은 시장’을 샅샅이 찾은 끝에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 분야에 1988년 뛰어들었다.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우면 값을 3배라도 낼 만한 시장’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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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DAC는 텐트용 알루미늄 폴(뼈대) 시장의 90%를 장악한 독보적인 세계 1위다. 텐트 구조 설계부터 알루미늄 폴 개발과 생산까지 모두 하는 ODM 기업이다. 항공기 합금 수준의 초경량 고강도 알루미늄 TH72M을 자체 개발해 기존 폴 무게의 30%를 줄인 것이 성공 비결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DAC가 독일 업체인 줄 알더라고요. 노스페이스의 히트 상품인 ‘돔 에잇’ 텐트도 10년 전에 제가 설계해서 만든 것인데, 아무도 한국 중소기업이 그런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브랜드의 장벽’이었다. 진정한 세계 1위가 되려면 자체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 싶었다. 태양신(헬리오스)과 밤의 여신(녹스)의 이름을 담아 헬리녹스라는 브랜드를 2011년 만들었다. 300g에서 200g으로 무게를 줄인 등산 스틱을 내놓았지만 브랜드 사업은 쉽지 않았다.

전환점은 2012년 개발한 ‘체어원’이라는 제품과 아들 라영환(32) 헬리녹스 대표의 합류였다. 캠핑용 의자인 체어원은 무게 850g으로 접으면 어른 남성 신발 크기 정도다. 그런데도 성인 남성 두 명 정도(145㎏)의 무게를 지탱한다. 시장은 ‘어디서도 못 본 제품’에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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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인 미국 아웃도어 시장의 약 절반을 장악한 제조·판매업체 REI가 캠핑가구 부문 전체에서 연간 800만~1200만 달러 어치를 파는데, REI가 체어원 한 제품만 가지고 출시 첫해 800만 달러 어치를 판매했다.

체어원도 REI 등에 ODM 제품으로만 팔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REI의 판매 시기가 늦어지면서 아들 라영환 대표가 진두지휘해 헬리녹스 브랜드로 먼저 시장에 내놓았다. 그런데 자체 브랜드로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는 “손끝에 달랑 종이처럼 가볍게 의자를 올려놓은 사진을 비롯해 새로운 마케팅 컨셉트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2013년 독립 법인으로 분사한 헬리녹스는 2015년 매출을 210억원으로 잠정 집계했다. 직원은 4명에서 25명으로 늘었다. 라제건 DAC 대표는 “나는 매출 200억원을 올리기까지 20년 넘게 걸렸는데, 헬리녹스는 3년 만에 해냈다”고 말했다. 약 2㎏의 초경량 야전 침대 ‘코트원’ 등 혁신적인 제품이 연달아 헬리녹스의 이름으로 나왔다.

헬리녹스 제품들은 2013년 세계적인 디자인 상인 레드닷 어워드를 수상한 이래 올해까지 4년 연속 총 10개의 상을 받았다. 제품군도 다양해졌다. 처음엔 체어원이 매출의 100%였지만 지금은 40% 정도다. 새로 내놓은 가방 브랜드는 이름이 ‘시행착오 연구 모임’이라는 뜻의 터그(TERG, Trial and Error Research Group)다. TERG 가방은 올해 일본에만 100만 달러 넘게 수출했다.

“새로운 알짜 사업을 아들에게 넘기니 아쉽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라제건 DAC대표는 “아들이 없었다면 지금 체어원은 ‘노스페이스’ ‘REI’ 브랜드로 팔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세대에서는 못했던 브랜드 사업을 아들 세대는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성실하고 꼼꼼하게 오래 버텨야 하는 제조업과 브랜드 마케팅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 세대는 우리와 달리 해외 여행도 일찍 경험하고, 여러 나라의 좋은 물건을 쓰고 자라서 눈높이가 다르다”며 “이제 한국 중소기업도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들 라영환 대표는 “DAC의 혁신적인 기술이 없었다면 헬리녹스가 아무리 차별화한 디자인과 마케팅을 해도 지금처럼 성장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라제건 DAC 대표는 선친이 자신의 호를 따서 생전에 만든 ‘각당(覺堂)복지재단’ 이사장을 맡아 지원하고 있다. 아들 라영환 대표도 헬리녹스 설립 첫 해부터 이 재단을 후원하고 있다. 라제건 DAC 대표는 “대를 잇는 한국 기업의 롤모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대표=연세대에서 사학·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미국 퍼스트인터스테이트 은행과 동아무역 기획실장 등을 거쳐 1988년 동아알루미늄(DAC)를 창업했다. DAC는 세계 1위 텐트용 폴 생산업체다.

◆라영환 헬리녹스 대표=성균관대에서 독문·영문학을 전공했다. 부친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대표가 개발한 초경량 아웃도어 제품을 자체 브랜드로 기획·판매하는 기업 헬리녹스를 2013년 창업했다.


글=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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