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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인생 막장서 길어올린… ‘맛있는 성공스토리’ 들어보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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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사업 실패를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연매출 35억 원에 이르는 샌드위치 업체 ‘에스엘비코리아’의 사장으로 재기한 정주백 씨(53)가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낸 샌드위치 카페 ‘멜랑제’ 앞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들어 보이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네 번의 사업 실패-이혼 딛고 연매출 35억 ‘에스엘비코리아’ 일군 정주백 대표


《화장품 회사 영업사원 그만두고 룸살롱 과일 납품 사업 시작. 보기 좋게 실패. 이번엔 신혼집 팔아 4평짜리 미니슈퍼 열었지만 또 실패. “인생에 미래가 안 보여.” 네 살, 한 살짜리 두 아들을 남기고 아내가 떠났다. 밤새워 김밥 말아 대학 매점에 납품해봤지만 역시 실패. 은행대출에 사채까지 끌어와 빵집 냈지만 실패. 한강 다리에 섰다. 희한하게 오기가 생겼다. “죽을 때 죽더라도 비싼 것 좀 팔아보고 죽자.” 서울시내 빵집 200군데를 돌아다니며 샌드위치의 맛을 봤다. 그렇게 ‘프리미엄 샌드위치’에 도전했다. 점점 판매량이 늘더니 100개가 1000개 되고, 1만 개가 됐다. 》


# 프롤로그-1989년 서울의 한 룸살롱

“정 대리, 술잔 비었잖아. 거 참….”

“아유,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눈치가 없다니까요.”

서 른한 살의 잘나가는 화장품 회사 영업사원이던 나는 그날도 거래처 직원 접대하느라 바빴다. “부장님, 안주 드셔야죠.” 이쑤시개로 수박을 콕 찍어 턱 아래에 갖다 바쳤다. 적절한 타이밍에 술 따라가며 허세에 맞장구치며 비위 맞추는 건 매일 겪어도 고역이었다.

‘에이 더럽다. 차라리 저 수박 파는 일이 백배는 편하겠네.’

나 정주백이 누군데. 월 매출 300만 원으로 꼴찌를 도맡았던 용산 대리점을 반년 만에 월 매출 1억3000만 원으로 끌어올린 ‘전설’ 아닌가. 한 달도 안 돼 밑창이 닳아빠진 구두를 버려가며 일한 끝에 사장 표창도 받고, 3000만 원짜리 단독주택 신혼집도 마련한 나다. 언제까지 이놈의 ‘을(乙)’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손님, 내리셔야죠.” 택시 운전사가 흔들어 깨웠다. 애써 정신을 차리며 비틀비틀 걸었다. 집에 다다를 무렵 회사생활에 대한 회의는 결심으로 변했다. ‘내 사업을 일구자. 이 실력으로 뭘 하든 절대 굶지 않는다.’ 다음 날 만류하는 상사와 동료들을 뿌리치고 사표를 냈다.

#1. 2005년 봄, 서울 강남

“조선호텔입니다. 저희 상무님이 좀 만났으면 하시는데요.” 뚝. 걸려온 전화를 그냥 끊어버렸다. 벌써 세 번째다. 두려웠다.

왕년의 패기 넘치던 정주백은 사라졌다. 머리는 희끗거리고 손등이 터서 갈라진, 삶에 찌든 중년 남성이 있을 뿐이었다. ‘내 노하우를 빼앗아가려는 거겠지.’ 불안한 마음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사 흘 뒤 같은 전화가 또 걸려 왔다. “제발 끊지 마세요.” 아무 말 없이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정 사장님 때문에 저희가 혼났습니다. 상무님이 정 사장님 샌드위치를 드시고 ‘너희들은 왜 이것처럼 못 만드느냐’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시간 좀 내주세요.”

낡은 차에 샌드위치 5개를 싣고 약속장소로 갔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 네 명이 90도로 고개를 숙여 맞았다. 살면서 이렇게 정중한 대접은 처음이었다. 내가 가져간 참치 샌드위치, 베이컨 샌드위치가 고급 접시에 가지런히 놓였다.

“샌 드위치는 이게 진짜야. 우리 것은 아니야.” 조선호텔 상무가 한 입 베어 물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볼펜 잡은 게 하도 오랜만이라 글씨가 서툴렀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사표를 던진 그해가 떠올랐다.

#2. 다시 1989년 겨울

“원 래 거래하던 사람이 얼마에 물건 댔어요? 에이, 내가 더 빼줄게.” 사표를 쓴 다음 날, 바로 룸살롱과 카바레를 상대로 과일장사를 시작했다. 퇴직금 1000만 원으로 중고 1t 트럭을 장만해 서울 가락시장에서 수박 50통, 복숭아와 딸기 10박스를 샀다. 룸살롱을 찾아갔다. 그동안 쌓은 영업 실력을 한껏 살려 룸살롱 ‘상무’들을 대하니 일이 곧잘 풀렸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에 집 담보대출을 받아 사업을 키웠다. 룸살롱 7곳에 월 900만 원어치씩 과일을 납품하기로 했다.

드디어 한 달 뒤, 수금하러 갔다. “정주백입니다. 김 상무님을 뵈러 왔는데.”

“정주백? 우리 상무님은 그런 사람 모른다는데?”

“에이 장난도 참. 저 섭섭해요 진짜.”

“전에 있던 사람들 이제 없어. 주인이 바뀌었대도!” 어처구니없었다. 순식간에 세 업소에서 3000만 원을 떼였다. 사표 내는 걸 만류하던 전 동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렸다.

신 혼집을 팔던 날 아내는 말이 없었다. 반지하 방으로 집을 옮기고 4평짜리 미니슈퍼를 열었다. 네 살, 한 살인 두 아들을 근근이 키우던 어느 날, 아내가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인생에 미래가 안 보여.” 이혼 요구였다. 졸지에 아들 둘을 떠안은 이혼남이 됐다.

어린 애들을 돌봐야 하는데 하루 종일 슈퍼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순 없었다. 김밥을 말아 대학 식당이나 매점에 납품하면 어떨까. 슈퍼마켓을 정리한 돈으로 시금치, 우엉, 쌀을 샀다. 밤새워 김밥 300줄을 말아 무작정 서울의 한 대학에 갔다.

“이 김밥은 우엉도 없는데 왜 다른 것보다 200원이나 비싸죠?” 우물쭈물하다 김밥을 그대로 들고 매점을 나왔다.

햇 살 좋은 대학 캠퍼스를 스무 바퀴 돌았다. 주머니에 남은 돈을 털어 우엉을 사 들고 집으로 왔다. 아들들은 새까만 손을 씻지도 않고 자고 있었다. ‘우엉을 넣어라.’ ‘맛살을 더 넣어라.’ 대학 측의 요구에 맞추다 보니 김밥 한 줄 팔아 남는 돈은 딱 70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가격 경쟁에 밀려 접고 말았다.

#3. 1995년 봄

곤궁한 삶의 연속이었다. 하루 종일 목걸이 1000개를 납땜해도 입에 풀칠하기 힘들었다. 딱 한 줌 얻은 쌀을 금싸라기라도 되는 양 소중히 씻어 밥을 지었다. 아들 밥숟가락에 김치 한 조각을 올려줬다. 할 수 있는 유일한 아버지 노릇이었다.

그날 오후였다. “담임입니다. 학교로 오셔야겠어요.” 아들이 담임선생님의 지갑에서 돈을 훔쳤다고 했다.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아들의 뺨을 때리고 발로 짓밟으며 사정없이 때렸다. 아들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데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자식들을 봐서라도 한 번 더 일어서야 했다.

중고 오븐과 믹서 한 대를 구해 빵을 만들었다. 다시 그 대학을 찾아갔다. 다행히 조금씩 팔려나갔다. 1996년 어느 날. 평소 우리 부자(父子)를 눈여겨본 동네 상가 주인이 “싼값에 1층 가게를 내줄 테니 빵집을 해보라”고 제안했다. 수백 번도 더 허리를 숙였다.

은행 대출에 사채까지 끌어와 마련한 1억 원으로 인테리어도 하고 제빵 기기도 들여놨다. 직원도 2명 뽑았다. 장사는 잘됐다. ‘이런 게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행복했다. 딱 1년 2개월 동안은.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우리도 사정이 어려워서 그래. 가게 좀 빼줘요.” 그렇게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대출 받은 원금과 이자, 외상으로 산 자재 대금, 직원 인건비에 퇴직금도 챙겨줘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빚 독촉은 질겼다. 창밖에서 발자국 소리만 나도 불을 끄고 아들 둘을 끌어안은 채 숨죽였다. 하루에도 열두 번 ‘죽어야지’ 생각하다가도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보면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4. 2002년 겨울

희 한하게도 삶의 끝에 서니 오기가 생겼다. ‘갈 곳 없는 인생 막장, 죽을 때 죽더라도 비싼 것 좀 팔아보고 죽자.’ 빵가게 할 때 쓰던 기계를 활용해 ‘프리미엄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아보기로 했다. 제일 궁핍하던 시기에 프리미엄 전략이 떠올랐으니 아이러니했다.

서울시내 빵집 200군데를 돌아다니며 샌드위치를 맛봤다. 그러기를 석 달, 샌드위치가 입에서 살살 녹는 듯 기가 막힌 빵집을 찾았다. 가게 주인을 사흘 내내 조른 끝에 ‘윤 할아버지’라는 70대 노인의 주소를 받았다. 한때 큰 빵집을 운영했다던 노부부에게서 샌드위치의 모든 것을 전수받았다. 교육비는 한 달 뒤에 주겠노라고 거짓말했다.

한 달이 지났다. “돈은 준비됐는감?” 노부부가 물었다. 시장 국밥집으로 노부부를 모셔 식사를 대접하며 사실대로 털어놨다. “죄송합니다. 석 달 후에 드릴 테니….” 한겨울, 착잡한 표정으로 돌아선 노인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얼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렇게 배운 샌드위치를 다시 대학에 가져갔다. 당시 구내식당 밥값은 1400원. 샌드위치는 2500원이었다. 김밥 납품 때 연을 맺은 대학 구매담당자는 “또 망하려고 작정했나?”라고 핀잔을 줬다. 판매대에 30개만 올려달라고 사정했다. “자네도 자식새끼 먹여 살려야 할 것 아닌가. 딱해서 올려두기는 하겠네만….” 그는 혀를 끌끌 찼다.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저… 미안한데 샌드위치 없어서 못 팔아. 100개만 해서 얼른 갖다 줘.”

점 점 판매량이 늘어 100개가 1000개가 되고, 1만 개가 됐다. 지금은 신라호텔 ‘아티제’를 비롯해 대기업 구내식당, 대형 로펌 등에 ‘정주백표 샌드위치’를 납품하는 에스엘비코리아의 대표이사가 됐다. 연 매출 35억 원에 직원만 30명이다.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된 지 10년 만에 빚도 다 갚았다.

# 에필로그

나는 제2의 도전을 하고 있다. 늘 납품만 하다 보니 내가 만든 샌드위치를 맛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궁금했다. 올해 8월 6억5000만 원을 들여 서울 강남에 샌드위치 카페를 열었다. 예금과 적금을 몽땅 깨 전부 현금으로 가게를 차렸다.

나는 빚이 한 푼도 없다. ‘본의 아니게’ 그런 것이다. 사업을 하려면 자금이 넉넉해야 한다. 올여름 대출을 받으러 신용보증회사들을 찾아갔다. 빚 다 갚고 금융채무 불이행자 딱지를 뗀 지 벌써 4년이 지났으니 이젠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금융채무 불이행자 기록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난 여전히 신용등급 8등급, 실패의 연속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었지만 이내 추슬렀다. 요즘엔 서울시 창업스쿨에 강연도 나간다. 실패를 맛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강 연할 때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먼저 읊어준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낱’

태풍과 천둥을 끌어안고 지내온 처절한 실패담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창업에 실패해 좌절하고 스러져 있는 누군가가, 실패할 것이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내 모습을 보고 부디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것 하나면 됐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http://news.donga.com/List/3/0112/20111117/4193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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