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땅 학생데모, 성남고가 처음이다

by 김두기 on Jan 09,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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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국시대(失國時代 1910~1945) 항일학생데모를 살펴보니, 대구사범이 으뜸으로 되었고, 정주 오산학교가 이름이 있었고, 광주학생이 항일데모를 했다. 대구사범학교는 책이 나와 있다.

실국시대 서울 땅에는 항일했던 학교가 없었다. 1945년 8월에 광복이 되었다. 1960년이 경자년이다. 경자년 3월 17일에 서울 영등포에 있는 성남고등학교 학생이 오후 1시에 교문을 나서서 시위데모를 했다. 교장이 장군 김석원이었다. 시위데모 구호가 “부정선거를 다시 하라”, “마산의거학생을 즉시 석방하라”, “발포경찰을 처벌하라”였다. 서울 땅에서는 처음으로 있게 된 일이다. 서울시지(서울市誌)는 이 일을 대서특필해야 한다.

서울시사(서울市史)라는 책이 발행되었는데, 시사(市史)라는 말은 무식쟁이가 지은 말이다. 나는 그것을 발표한 바가 있다.

성남고등학교 학생 400여명이 자발적으로 영등포 중심지에 모여 데모를 일으켰다.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을 때, 폭악한 독재 리승만 경찰은 학생들을 발길로 차고 총대로 때리며 제지하였으나, 굽히지 않았다. 결국 100여 명 학생이 연행되어 문초를 받았고, 3명은 주모자로 지목되어 3일간 구류처분을 받았다. 데모가 발생했던 그 이튿날 학교장 김석원 장군은 영등포 경찰서로 달려가 간부와 학부형이 합석한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훈시했다. “정의의 길을 누가 막겠느냐. 너희들은 참으로 용감했다. 그러나 경찰에게 폭행을 가해서는 안될 것이다”라고.

김 장군 앞에서는 묵묵히 듣고만 있던 경찰간부들은 김 장군이 나간 뒤에 책상을 치면서 몹시 개탄했다고 한다.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은 ‘경찰이 학교 주위에서 경계를 하는 것을 알게 된 간부 학생들은 시간과 장소를 변경했고, 흩어져서 나아가도록 시켰다. 시장 로터리에 모여서 경찰에 데모실시를 통고했다.(학민사ː四․一九 민중사 쪽135.1984년>

☆ ☆ ☆ ☆ ☆ ☆ ☆

독자 여러분. 실국시대 서울 땅에는 부왜 역적들이 일본귀족이 되어 조선총독부에 들락거리면서 "아리가도오 고자이마스“라고 지껄이던 세상이었소이다. 나라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시골에서 서울에 왔으나, 항일하는 학교가 없었소이다.

광복 후 1960년 3월 17일에 “부정선거 다시 하라”는 학생시위가 서울에서 있었다. 그것이 성남고등학교 학생들 입에서 나온 것이다. 대서특필해야 한다.

독자 여러분. 성남고등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서울 땅을 정의롭게 만들었소이다. 성남고등학교 학생들 머리를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학교 교훈이 그렇게 만들었소이다. 성남고등학교 교훈이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자’였기에 학생들 머리가 정의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학교 설립자가 장군 김석원(金錫源1893~1978)이다. 1917년에 일본륙군사관학교 졸업.1920~1938년까지 룡산부대 근무. 1932년 리태원 보통학교 설립. 1938년 원석학원 성남중학 설립. 광복이 되어 1945년에 성남중학교교장․재단리사장. 1956년 륙군소장으로 예편했다. 1956년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리사장이 되었다.

장군 김석원이 하루빈(河淚濱) 안중근(安重根) 선생을 존모하게 되어 그것이 교훈으로 된 것이다.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자’가 하루빈 선생이 걸었던 길이다.

하루빈 선생을 존모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인물이 되는 것이외다.

려증동/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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